창천항로...(삼국지의 그 새로운 경악할만한 시각)

렛츠웹 + 게임/My Book 2009. 1. 8. 10:24
창천항로 28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이학인 (대원씨아이(주),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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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삼국지의 책들은 많은 작가들로부터 다시금 재해석되어
국내 동일 책들중에는 아마 최고의 수량을 자량할것이다.
유명 작가들은 삼국지는 꼭 한번 내어 보고 싶다고 할정도로...

하지만 이 수많은 삼국지중에 왜 창천항로인가...
그것도 글이 아닌 만화...

초등학교 무렵부터 읽기 시작했던 삼국지..
내가 읽은 수많은 삼국지중에 단연 많은 눈물과(그것도 나이들어서)
가슴속에 가장 뭉클한 감동이 있었던것..

창천항로..

한페이지 한페이지 읽을때마다 그 떨림은..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유명 서적도 아닌 만화에 대한 평은
정말 수없이 많다..
정말 한번 읽어볼만한 새로운 시각의 삼국지이다...
물론 그 새로운 시각의 흐름 뿐만아니라 그림까지..

--첫번째 평--------------------------------------------
정치적 인간의 재발견-창천항로 25권
전부터 조조에 대한 긍정적 해석이나 유비 중심의 삼국지연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종종 있어왔다. '조조를 사랑한 또 하나의 삼국지'라는 타이틀로 '창천항로'가 처음
나왔을 때 '조조 중심의 삼국지가 드디어 만화로까지 나왔구나'하며 '올것이 왔다'고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그림도 괜찮고 기존 삼국지 스토리에 얽메이지 않고 나름대로 새로운
삼국지의 세계를 그려 나가는 것이 신통하기도(?) 하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이래 그럭 저럭 몇년이 흘러가 벌써 25권이 나온 대작 만화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단지 재미삼아 읽곤 했던 초반부와는 달리 적벽대전을 지나 이제 스토리의
중반부 (아님 후반부?)에 치닫는 요즘에 이르러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느껴진다.

이번에 나온 창천항로 25권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있다.

적벽에서 대패하고 다시 오나라 복수할 기회를 엿보는 조조. 오랜만에 고향인
초를 지나 오와의 최전선에 위치한 합비성을 둘러본다. 합비성에는 온회와 장제
등 젊고 유능한 인물들과 많은 백성들이 힘들여 성벽을 보수하고 있다.

그곳에서 조조는 군사 유엽에게 질문한다.

"유엽, 여기에서 살고 싶은가?"

"..."

"왜 이곳 백성은 이런 노역뿐인 성시에 살려 한다고 생각하나?"

"..."

그때 합비의 전 성주인 유복의 후계자인 장제가 끼어든다.

"노역을 부과하는 만큼 백성을 풍요롭게 살게 한다."

"그것이 유복님의 정치였습니다."

"주변의 적을 회유하고 학교를 짓고,

"사람 눈에 드러나지 않은 범죄까지 남김없이 적발하고."

"제방을 수복하여 관개를 정비하고 경작법을 새로이 궁리하여 수확을 늘려간다."

"병으로 드러누워 마지막 숨을 내쉬는 그 순간까지 지혜를 짜내어,"

"실로 세밀하고 그지 없는 정책을 관철해 나가셨습니다."

조조가 대답한다.

"합비의 지난 8년간은,"

"내 상상을 넘어선 것이다."

"내가 유복을 자사에 임명하여 그 사람이 단신으로 이 땅에 섰을 때"

"합비는 아무것도 없는 성터에 불과했다."

"그런 것이 지금."

"백성 7만의 삶을 끌어안은 제국의 방위 성시로서 이 눈아래 펼쳐져 있다."

"모든 것은 8년 전,"

"이 땅에 섰던 단 한 명의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조조는 성벽에 올라 이제는 보이지 않는 유복에게 두손을 모아 인사를 보낸다.
번성한 합비의 성시 위에 펼쳐지는 유복의 그림자는 우람한 장수나 날카로운
모사의 이미지가 아니라 수더분한 턱수염에 지저분한 옷차림을 하고 당장 성벽
복구의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나온 듯한 소탈한 정치가의 그것이다. 그는 한손
을 들고 조조에게 멋적은 미소를 짓고 있다.

"유복이여..."

창천항로에 나오는 조조는 기존의 삼국지에서 그려지던 간악한'난세의 간웅'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일본만화에 자주 나오는 오다 노부나가와 같이 앞뒤를
알 수 없게 좌우충돌하는 괴짜만도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대하면서
정치를 생각한다. 그 자신이 시인이며 군인임과 동시에 난세를 겪으며 치세를
준비하는 정치가라는 강한 자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주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의 재능을 각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단지 의로움만을 생각하는 협객이었던 관우에게 한의 조정에서 위정자로서의
능력을 펼칠 것을 권하고,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던 '순수군사'인 곽가에게도
병석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그가 마지막 순간에 '군사'를 넘어서 '정치'에
눈뜨도록 이끈다. 장군으로서 탁월했던 하후연에게 이제는 수많은 장군들을
다스리는 '정치가(사령관)'의 역할을 할 때가 되었음을 일깨운다.

그에게 있어 정치는 사람들의 삶의 세계이다. 때문에 무릉도원과도 같은 신선들의
세계에 반쯤 몸을 걸치고 인간 세상을 재미삼아 내려다보며 난세의 영웅인 조조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기대하던 제갈량에게 조조는 적벽에서 패주하면서도 "좀 더
사람의 냄세를 뭍히고 오라"고 면박한다.

창천항로의 스토리를 맡은 이학인이란 사람은 이미 몇년전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고
한다. 지금 나오고 있는 내용이 그 사람이 남겨놓은 유고에 바탕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작가가 계속 쓰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창천항로의 남은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흥분과 기대가 교차하는 요즘이다.

----두번째 평------------------------------------------------
1. 序

[창천항로]의 등장은 98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 이는 순전히 관점의 기준임 -

· 문, 무, 예로 완벽한 인간의 형상으로 등장한 神人 [맹덕 조조]
· '협', '의리'라는 것과 '운', '하늘'을 믿으며 방만한 자신감의 [현덕 유비]
· 얼기설기 조조를 스승으로 모신 얼뜨기 모사 [문약 순욱]
·' 호족(胡族)'의 피를 이어받은 괴력의맹장 말더듬이 [봉선 여포]
· 죽음마저 아름다운 포학독재의 미학 머찐 [중영 동탁]
· 한나라를 위한 충성이 아닌 자아 파멸로서의 말로를 보여준 [사도 왕윤]

등등등 '삼국지 연의'와 '정사 삼국지'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창천항로]는 말 그대로, 그네들이 시사하는 바대로 '밀레니엄의 새로운 삼국지' 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유비 위주의 삼국지에 대한 - 극히 일부적으로 조조 위주의 삼국지 해석을 보여준 책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한 유비 위주의 해석은 어쩔 수 없다 - 완전한 '뒤집기' 한판의 모습. 가히 경악이고 새로움이고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그 파격과 경악의 [창천항로]가 이제 그 '새로운 해석'을 벗어나 작가 나름의 제멋대로인 만화 그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아직까지 [창천항로]는 '진짜 삼국지'로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가짜 삼국지'로서의 단순 만화로서의 '[창천항로]'를 보여주려고 한다. 이제 [창천항로]는 단순한 '만화'로서 보기만을 권한다.

2. '사실'은 '설화'다.

기실 그 출발의 전조부터 수상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난 김일성이 죽을 것을 1년 전에 알고 있었다라고 김일성 죽은후에 나타나서 말하는 이들과 뭐가 다른가?' 라고 질문하는 분들이 계시는군요^^

하지만 책의 서두에 밝혔다시피 '밀레니엄의 새로운 삼국지'에 맞는 나름의 해석이리라 여기고, 게다가 인구에 회자되는 '삼국지 야사' 같은 이야기는 삼국지를 아는 이들에게도 충분한 호기심으로 작용하여 초기 [창천항로]가 인기를 얻는데 큰 이바지를 하는데 공헌한다. 그 대표저인 예가 조조의 첫 여자가 '호녀(胡女)'라는 것의 등장이다. 이는 꽤 쏠쏠한 재미를 가져다 주었다. '하하~ 정말이야?'라는 단순한 즐거움의 새로운 지적 호기심을 가져다 주는 책이 바로 [창천항로]였다. 그러나 사실 이는 얼토당토 않은 그 사실의 여부조차 파악자체가 불가능한 말 그대로의 '설화'이다. 게다가 그러한 '설화'가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로서는 그러한 '호녀(胡女)'와의 로맨스는 눈 똥그랗게 뜨는 하나의 '기호(嗜好)'로서 작용하게된다.

즉, '조조 시각의 새로운 삼국지를 말한다'라는 것으로 인기를 끈 것이 아니라, '다음에 어떤 설화가 등장할까?' - 이는 나그네 생각이고 - 불분명의 대다수 이들에게서는 [창천항로]에 새로이 표현되어지는 '삼국지 사실'의 등장에 눈 빠지게 기다리는 모습은 그네들에게 '새로운 삼국지'에 대한 동경으로 다가온 것이다. 다시 말해 유비를 배제하고 조조 시각의 제대로 된 삼국지의 복원이 아니라 '설화'라는 알 수 없는 구전 이야기를 '사실'이라는 것으로 재구성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이야,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았다'라는 멋모르는 삼국지에 대한 생각의 구성으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조조 삼국지'를 기다리는 '유비 위주 삼국지'에 대해 반대하는 마음으로 [창천항로]를 보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사실(구전설화)이 또 무엇일까?'라는 본말이 전도된 모습으로 독자의 입맛을 왜곡시키며 그 인기 행진을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창천항로]에서 '사실'은 곧 '설화'이다.

3. 다수와 소수를 모두 아우른 전략

사람은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바에 대한 고정관념이 타파되는 그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한다. 즉, 자기 나름으로 삼국지를 평가하기는 하지만 고정된 보편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 내 생활이 있는데 하루 24간을 줄창 '삼국지'만 생각하면서 살 수 없는 범인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고정적 관념을 누군가가 깨어주면 즐거워하고 - 나그네도 마찬가지이다 - 스스로 '이야 그렇게도 생각이 가능하구나.' 라고 생각의 틀이 깨어지고 시각이 넓어지는 것을 즐거워한다. 물론 그러한 보편적 고정관념이 급격하게 부숴질 때는 붙잡고 싶어하는 것 역시도 사람이다.

자신에게 큰 주축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넓어져 좋다'가
자신에게 주요사항이 될 때는 '무슨 말도 안되는 개뼉다구 같은 소리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반격한다.

[창천항로]는 전자의 경우에는 극단으로 달릴 정도로 '파격'을 시행하고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 보편적 고정관념의 틀을 부수지 않고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다. 독자 모두를 아우르겠다는 상업적 발상이다.


1) 완벽한 인간 '맹덕 조조'

조조는 싫어해도 그의 능력을 비하하는 이는 삼국지 독자에게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즉, 이해할 것은 이해하자는 분위기다. 단, 이해해도 인정할 수 없다는 그런 말이다. 그래서 조조를 멋지게 그려도 그냥 본다. 물론 만화 서두에 밝힌 '유비 위주의 삼국지를 버리고 조조 위주의 파격 삼국지'라는 글을 보고 독자들이 한수 접어두고 읽기 때문인 것도 크게 작용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완벽하다. 흠이 없다. 조조의 모사들도 조조에게 사사받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해하고 본다.


2) '운', '협', '의리', '하늘' 허무맹랑 '현덕 유비'

이러한 유비의 모습에 반감을 가지는 유비팬이 많다. 그럼에도 유비의 모습에 탓을 하지 않는다. 운에 기대고, 허무맹랑한 큰 소리로 아무 것도 없이 초기 자존심으로 - 중산정왕의 후예 - 큰 소리 치는 한심한 유비의 모습을 커버하는 것이 바로 '협'이다.

작가는 유비에게 '협'을 부여한다. 그러면서 유비팬에게 어필한다. 작가의 '협'. 즉, 의리라는 것은 유비의 '인(仁)'으로 이어지고 유비의 '매력'으로 어필되어지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뒷골목 깡패집단 수준의 유비 패거리에게 있어서의 의리라는 것과 그저 그런 수준이고 조그만 동네서 힘 하나 믿고 큰소리치는 '골목대장'식의 자존심이 곧 '협'인데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것으로서 '인'이라는 유비의 보편적 고정관념에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유비의 인정을 좋아하는 팬으로서는 '의리', '협'으로 맺어지는 유비의 모습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3) 별을 보는 사나이 '자룡 조운'

조자룡 또한 멋지다. 조자룡 팬이 보기에 조운은 더 이상 멋질 수 없게 그려져 있다. 따라서 그네들에게 조자룡의 모습에 왈가왈부할 꺼리가 없다. 그렇다면 반 조자룡인 이들이 보기에 문제가 발생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역시도 발생하지 않는다. [창천항로]에서 조자룡이 속담처럼 '조자룡 헌창 쓰듯 한다'라는 빼어난 모습 - 반 조자룡 팬들은 조자룡에게서 있는 장수다운 힘을 그렇게 높게 치지 않는다 - 이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장판파에서 장비같은 독단적 행보보다는 주군의 의향을 알아보고 명받고 하려는 조직내 순응하는 모습들의 등장은 - 나그네의 판단 - '보아줄 만'한 조자룡인 것이다.

이외에도 동탁, 여포의 모습도 볼 수 있지만 위의 인물만 살펴보아도 '이분법적 판단'으로 찬반 토론이 될 수 있는 것은 교묘하게 양쪽편의를 보아주는 '상업주의 마케팅'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수의 보편적 고정관념을 깨트리면 당연히 다수의 독자를 잃는 거은 뻔한 이치이고, 그렇다고 소수의 반대파들의 입맛을 잃게 한다면 그나마 많지 않은 삼국지 독자들을 분할하는 모순을 낳게 된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마케팅이 바로 [창천항로] 인기의 비기인 셈이다.


4.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한 것이 잘못

그러나 그렇게 모두를 아우르고자 하기 때문에 그 줏대를 잃고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도 욕을 먹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나그네도 그러하고, 누구든 욕 먹는거 좋아하는 미친놈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욕을 먹'지 않으려고 하다보면 '나'는 없어지게 된다. '세상 모두로부터 사랑받고 싶다'가 한갖 꿈에 불과하듯 '누구에게도 욕을 먹고 싶지 않다' 역시 불가능하다. 세상에 그런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자기 방식으로 떳떳하게 욕 먹을 것 먹으며, 그것에 대해 꿋꿋한 자기 생각으로 변호하면 된다. 물론 이론적 논리성은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음은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고 자기가 판단한다면 무시하면 된다. 잃을지라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자기 가치'이다. 줏대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창천항로]는 그 줏대를 잃어버렸다. 조조는 초기의 낭만적 초인에서 20권의 지금에 이르러서는 '神人'인 되어버렸다. 이는 중간 중간에서 자기 모사들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고 조정하는 모습이 후반에는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신적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유비의 그 허무맹랑한 자존심이 그의 brain이라 할 수 있는 제갈공명을 만나면서 그나마 '협'이라는 유비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리' - [창천항로]에서 유비를 그리는 방식 - 의 주축이 되는 자존심을 잃고 성애적 본능인 libido에 좌지우지되는 심약한 본성의 인간으로 전락해 버린다. '협'도 사라졌다. 유비에게 남은건 아무것도 없다.

장비의 유비 향한 '의리'와 조운의 주군 향한 '충'은 점차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신념의 내면화가 되어버렸다. 그들에게 '협'·'충'은 주군으로서의 유비가 아닌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그릇을 재보겠다'는 다짐으로 유비와 계약한 관우는 조조와 유비의 그릇을 재보고는 갑자기 그 초반의 '냉철한 저울질 이성'은 사라지고 의리적 '협'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을 보았을 때 무언가 처음과 달라지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이는 이들뿐이 아닌 모든 인물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고 볼수 있다. 초기의 [창천항로]의 신선한 모습들은 후반으로 가면서 제대로를 찾지 못하고 어영부영 흘러가고 있다. 모두의 입맛에 맞게 하려고 설탕 넣고, 간장 넣고, 소금 넣고, 버터 넣고, 기름 치고, 파 넣고, 겨자 넣고, 식초 넣고, 고춧가루 치고, 깨로 간을 낸 아무에게도 맞지 않는 입맛의 요리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요리라고 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창천항로]는 지금 이 상태다.


5. 結

얼마전에 작가가 사망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 이가 나름으로 [창천항로]를 그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20권의 겉면을 보면 '글 : 아무개, 그림 : 아무개'로 분할되어 있다. 정말로 작화자가 그린다면 '글, 그림 : 아무개' 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률적 제제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글 : 어무개, 그림 : 아무개'가 되어야 한다. 작가가 바뀌었으면 말이다. 그러나 20권까지는 작가가 동일하다. 따라서 그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변하지 않고 표현한 작가의 생각이다. 이는 '작가가 죽어서~' 라는 설명이 별무소용이게 된다. 왜냐하면 죽기전에 작가가 표현한 [창천항로]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설화'의 '사실'화로 호기심을 유발하고 다수의 보편적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않고 소수의 파격까지도 생각하는 판매 마케팅 전략이 [창천항로]를 히트치게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설화'를 '설화'로 알고 있는 '사실'주의자들에게 '설화'의 '사실'화는 허무맹랑으로 들릴 수 밖에 없게 되고, 다수와 소수의 삼국지 독자들 모두를 아울러 충족시키려는 욕심은 줏대없는 만화로 전락되어 버렸다.

[창천항로]는 [삼국지]가 아니다.

단순 '만화'로서 본다면 권장할 만한 잘그린 '만화책'이지만, '새로운 삼국지'를 보려고 [창천항로]를 보려고 한다면 '읽되 믿지 말라'라고 한마디 해줄 수는 있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만화로서만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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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항로의 유명 글귀들..



밥을 입으로 옮겨 주는것은 손가락이다. 여인의 눈물을 닦아 줄수 있는 것도 손가락이고 귀중품을 손가락에 넣어 화려하게 장식할 수도 있다. 그 손가락, 그 손에 검을 쥐면... 천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1권 첫부분에서..



내가 즐기는건 천하백성들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다.나라는 그릇의 알맹이가 되어라. 네가 내 그릇에서 넘칠땐 언제라도 그 그릇을 깨면 되는 것이다.
-유비가 관우를 만나 나누는 대화중에서



원소는 논할 것도 없고 조조는 논할 도리가 없습니다.
-동탁 휘하 장수 서영이 원소의 반동탁 연합군과 싸운후에 동탁이 조조와 원소에 대해 물을때



하늘의 뜻에 비춰봐도 아직 내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은둔하며 기다리는건 쉬우나 웅비의 때를 알기란 어렵다.
-조조가 연의 목으로 부임하여 황건적을 토벌할때의 독백



완벽하구나 여포. 천하에 대한 선악은 없고 오직 용의 숨결만으로 싸워나갈 뿐이구나..
-여포와 첫 일검을 나눈 후 조조의 독백



-손책공! 어째서 일대일 전투에 응하셨소?
-네게 칭찬받기 위해서다...
-승부가 난 전장에서 태사자가 일기토를 청했을 때 손책이 응하자



사직이란 땅의 신(神)인 사(社)와 오곡의 신(神)인 직(稷)..지상의 백성이 구하는 이 두 신을 받드는 곳이 바로 사직..즉 국가인 것입니다. 천자는 사람의 형태를 한 하늘인 것입니다.
-조조가 동탁을 몰아내고 천자를 알현한 후의 문답 중에서



무(武)라는 건 마음이 항상 주군 곁에 있어야만 올바른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위가 조조를 호위하면서 한 말



-어떻게 살아돌아 왔는가..
-운이 좋아서.
-그럼 죽은자도 운인가?
-힘이 없으니까...

-조조가 악진의 훈련을 보며 대화하던 중에서



그는 절세의 미녀다.발군의 모습을 하고 있고 변덕도 심한데다, 남의 말을 안듣고 방만하여 자신의 아름다움을 남과 비교하려 하지도 않는다. 꼭 끌어 안지 않으면 막을 수가 없지.
-여포와의 전쟁에서 여포를 평가하면서 조조가 한 말



첫째 사람을 다스리면서도 사람을 살피지 않는자.
둘째 난세와 싸우면서도 치세를 시작하려는자.
세째 하늘을 알면서도 천의를 거역하는걸 두려워 하지 않는자.

-군주의 세가지 조건은 무엇인가하고 진궁이 조조에게 물었을 때



역사란 이름난 자의 죽음을 모아가는 큰 항아리이다.
역사가 가르쳐주는 천의는 너무나 변덕스럽다.
큰 항아리가 찰때까지 하늘의 때를 기다리는 거다.
그 정도 도량이 없다면 하늘의 때는 없을 것이다.

-공손찬이 자택에서 독백한 것 중에서



-한 바퀴 돈 후 돌아간다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천하를 휘릭하고 한바퀴 돈다는 말이다. 아니, 천하가 날 한바퀴 돌아본다는 느낌이랄까?

-조조를 떠나면서 유비가 한 말...



널 발견 했을때와 같다, 곽가.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원석을 발견하면 즉시 그것을 다듬어 보고 싶어지지..
-왜 유비를 받아들였냐고 곽가가 추궁하자



너란 인간을 무(武)와 지(智)로 나누면 깨끗이 나뉘어 남는 게 없다.
너희들에겐 마음의 그늘이 없다. 마음의 그늘이 없는 자는 압도적으로 강하다.
그러나 나를 깨고 내 모든 걸 빼앗을 인간은 나 이상으로 마음의 그늘이 있어서 나를 끌어당기는 인간이다.
-원소의 맹장 문추와 대전할 당시 조조가 문추에게 한 말



내가 싸울 상대는... 백만 인간이 백세에 이를 만큼의 원한을 안주삼아 천하라는 술잔을 들이키고 있다.

-손책이 자신의 상대인 조조를 표현한 말



원소군을 진정으로 매장시키기 위해선... 리(理)로 전쟁을 꾸려 나가는 것이 아닌. 모든 지력과 병력을 즉흥적인 번뜩임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우선은 너희들의 소리에 선율을 실어보자. 이 선율을 부여하듯 병사를 움직이고 전쟁터를 하나의 곡으로 연주해 보는 거다.
-원소와의 전쟁을 앞두고 참모들이 논쟁을 펼치자 듣고 있던 조조가 한 말



고양된 음성은 방해만 될뿐.. 군사(軍師)가 말을 할땐 두뇌소리만으로 하라.
-정욱이 조조에게 불리한 전황을 보고하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하자 조조가 한 말



전쟁에 이길 때마다 하지 않으면 안될일과 하고 싶은 일이 더해져 마음은 점점 자유로와 진다.
-원소를 정벌하면서 관우와의 일문일답 중에서



공명은 천하를 나누는 것으로 천하를 늘리라고 한거야. 천하가 하나라고 결정짓는 것은 권력자의 욕심이지.책략에 피를 통하게 하는건 당신이 할 일이야.
-공명의 동자가 공명의 천하삼분지계를 유비에게 설명해 주는 중에서



이 건축물은 시황제란 남자를 실로 잘 표현하고 있지 않느냐... 이는 남쪽에 사는 한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만 북쪽에 사는 이에겐 이를 넘어 공격해 달라는 기분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기도 하지. 그리고 이는 자신의 강대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지배가 미치는 공간은 여기가 한계라는 걸 인정했다는 증거다.대지에 경계를 긋는 이 장성은 이 얼마나 어리석은 어리석음인가?
-조조가 오환족을 정벌하러 가면서 곽가에게 한 말...



-여기 도착한게 언제쯤인가?
-4시간 전쯤...
-과연 빠르긴 하다만 저 오환족에 비하면 반 정도 속도일테지.. 먼저
간다.
-그대는 자지 않고 가는 건가..
-내 기마술로는 너희들의 행군속도를 도저히 따를 수 없다. 군사는
전쟁터에서 지휘할수 있는 힘만 남겨두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장료와 곽가가 선봉으로 오환족을 토벌하러 가면서 나눈 대화 중에서...



나라의 주인은 자신이 먹은적도 없는 굉장한 요리의 맛을 만들어 내야하는 거야.. 그 맛을 위해 여러가지 음식재료를 모아선 완전히 새로운 조리법을 창출해낸다. 그게 나라를 구성하는 법이랑 제도라는 것이다. 호화로운 요리를 계속 만들어 내지 못하는 왕에게 백성은 이끌리지 못하는 것이다.

-조조가 곽가에게 정치에 대해 설명하는 말 중에서



천하, 전쟁, 명성은 물론 주군조차 필요없는 것이 바로 이 무(武).
모든 것을 버리고 단지 이곳에서 목숨을 건 장비의 무는 무섭게도 강하고 지극히 맑다!

-장판파에서의 장비를 평가한 하후돈의 말
posted by 망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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