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 도와주며 돈도 버는 '착한기업'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세자르(Cezar·35)씨의 집에 도착한 것은 지난 12월 2일 저녁 8시. 브라질 남부도시 포르테 알레그레에서 숲길로 달린 지 1시간 만이었다. 옥수수 밭 한가운데에 지어진 그의 외딴 집은 환한 전기로 밝혀져 있었다. 세자르씨는 지붕에 달린 흰색 태양 집광판(태양 빛을 모아 전기로 바꾸는 장치)을 보여주면서 “이걸로 전등도 켜고 TV도 본다”고 자랑했다. 5년 전 이곳에 이주해 옥수수 농사를 지어온 그와 가족은 전기 없는 생활을 계속해왔다. 해만 지면 온 가족이 잠자리에 들어 해가 뜨기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이젠 집광판 대여비로 한 달에 38헤알(약 2만원)만 내면 전등을 물론 휴대폰 충전이며, TV와 라디오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에게 ‘빛의 세상’을 가져다 준 것은 정부가 아니었다. 위코노미(WEconomy) 기업인인 파비오 호사(Fabio Rosa)씨가 그 주인공이다.

◆“빈민은 소비자”

호사씨는 이른바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erpreneur)다. 포르테 알레그레 공항에서 만나 인터뷰에 응한 호사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우리의 소비자입니다. ”

47살의 이 사내는 2002년부터 태양 전기 공급을 시작해 벌써 5000가구에 빛을 선물했다. 그러나 ‘자선’ 개념만은 아니었다. 그는 전기 관련 기업을 찾아 “서민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사업이 시작되면 매출 증대의 돌파구가 생긴다”고 ‘사업성’과 ‘수익’으로 설득했다.

근거가 있었다. 그는 미리 시장 조사를 했다. 그 결과 브라질에서 전기없이 살고 있는 2000만명이 초롱불이나 가스등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 한 달 평균 10달러 이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2000만명이 월 10달러라면 연간 24억 달러(약 2조2500억원). 빈민을 위한 전기 공급이 거대한 시장이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호사씨는 태양열을 활용해 전기를 공급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값싼 집광판을 만들어 대여방식으로 보급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기술력. 그는 산타 카트리나 연방대학, 독일의 파라운 호퍼 연구소 등과 함께 값싼 집광판과 전구 개발에 돌입했다. 그 결과 9개 전기 업체가 이 비즈니스 모델에 동참했으며, 50여개 기업들이 영리를 위해 사업을 추진 중이다.



◆빈민을 도와주며 돈을 번다

기업이 가난한 사람을 도움으로써 돈도 번다면 그것 이상 좋은 일이 없다. 세계 3대 시멘트 업체인 멕시코의 세멕스(CEMEX)가 그렇다.

‘주식회사 파트리모니오 오이(Patrimonio Hoy·멕시코 말로 ‘오늘을 위한 기금’이라는 뜻)’는 세멕스가 만든 대출융자회사. 내 집을 지을 목돈 마련이 어려운 서민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시멘트와 벽돌을 구입하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지금까지 세멕스는 18만 가정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줬다. 이 과정에서 세멕스도 적잖은 수익을 올렸다. 시멘트 2300만포(50㎏짜리)와 벽돌 3억7800만개를 판 것이다. 내 집 공사가 진행되는 70주 동안 가격이 올라도 당초 가격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데다 배달을 공짜로 해주는 등 많은 혜택을 줬다. 하지만 세멕스 입장에선 원가를 알고 대량구매를 할 수 있으니 가격 인하의 여유가 많았다.

세멕스의 지원방식은 과학적이다. 방 한 개짜리 집을 짓는 기준으로 이용자에게 시멘트·벽돌·철근 등의 건축자재 구입비용으로 모두 9660페소(약 830만원)를 70주에 걸쳐 단계적으로 빌려준다.

지난 12월 11일 멕시코시티 인근의 빈민촌 산 루이스 멕스테펙에서 만난 알베르토 곤살레스(Gonzalez·47)씨는 “20년간 움막에서 지냈는데, 이제 6개월 뒤면 마이홈이 생긴다”고 기뻐했다. 그는 부인 살라자르(Salazar·43)씨와 함께 벽돌을 나르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9명의 대가족이 함께 지낼 콘크리트 주택을 짓는 중이었다.

제빵사인 곤살레스씨는 20여년간 매일 7시간씩 일하며 카스테라를 만들어왔다. 1주일에 버는 돈은 1100페소(약 9만4500원). 워낙 박봉이니 저축은 엄두도 못 낸다. 그래서 집을 지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세멕스의 도움으로 지금은 일주일마다 310페소(약 2만6600원)만 내면 가능한 일이 됐다.

곤살레스씨가 사는 톨루카 2지구에서 세멕스는 지금까지 700가구에 집을 지어주었는데, 작년에도 흑자를 냈다. 세멕스의 이 지역 담당 후고 무릴로(Murillo) 대표는 “대량구매를 통해 염가로 공급하는 과정에서 이윤이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멕스는 멕시코에 이어 도미니카·니카라과·베네수엘라 등 남미 인근 국가는 물론 이집트에까지 이 프로그램을 수출해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서 수익을 내고 있다.

이윤 추구와 사회공헌. 전통적 자본주의에선 서로 상극이라고 했다. 하지만 위코노미의 패러다임에선 두 가지 가치가 동시에 달성될 수 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위코노미(WEconomy)

WE(우리)와 Economy(경제)의 합성어. 파편화된 개인(I·나)이 아니라 협력·참여·공생하는 ‘우리’가 주인공인 자본주의를 말한다. 양극화, 경쟁에서 탈락하는 약자문제 같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우리’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자본주의 실험이다. 전통적 자본주의가 무시해온 약자 보호 같은 사회적 가치를 자본주의 체제 안에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형태로 구현된다

posted by 망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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